After.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를 봤다.

0koh 2023. 5. 7.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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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 하지만 우리는 오늘의 행복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걸까?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를 봤다. 그리고 이 글은 이 영화에 대한 감상이나 평가라기 보다는, 이 영화의 주제와 관련되어 내가 종종 느끼는 딜레마, 는 너무 과도한 표현이고, 사소한 고민에 관한 글이다. 이 글과 별개로 나는 이 영화를 많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힐링이라는 표현이 너무 사회에서 남발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 영화는 많은 사람들에게 힐링 영화로 다가올 것이라 생각한다.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 국내 개봉 포스터.

 

그리고 또 본격적인 얘기에 앞서 꼭 하고 싶은 얘기는, 도대체 저런 제목은 누가 지었는가… 이다. 영화의 원제는 ‘Christopher Robin’인데, 원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이 영화는 곰돌이 푸보다도 크리스토퍼 로빈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크리스토퍼 로빈이 어른이 되고 난 이후의 이야기를 그린다는 점에서 어른들을 위한 영화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영화가 어린 시절을 오래오래 떠나보낸 사람들이 느낄 수 있는 허망감을 자극하고 본인이 살아온 삶을 반성하게 만드는 영화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저런 제목으로 개봉을 해서 아동용 영화 (사실 이런 걸 구분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마케팅적인 측면에서) 같다는 인상을 주지 않나 싶어서 아쉽다. 물론 원제 그대로 ‘크리스토퍼 로빈’이라고 개봉했다면 대중들을 상대로 홍보를 할 때에는 원작에서 당연히 가장 유명한 캐릭터인 곰돌이 푸가 나온다는 것을 곧장 알기 어려웠을 수도 있으니 어떻게든 제목에 ‘곰돌이 푸’를 넣고 싶었던 마음은 이해한다. 하지만 역시 아쉬운 건 아쉬운 거다. 영화의 무게와 분위기가 달라진 기분이었다.

음, 그리고 영화는 좋았는데 나는 해당 영화의 주제와 같은 메시지 앞에서 항상 딜레마를 경험하곤 한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시키지 말 것. 오늘 하루의 행복을 충만하게 느낄 것. 성과주의에 매몰되지 말 것. 현재의 가치가 중요하다는 것은 이해한다. 그리고 그걸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잊고 살아가니까 이렇게 종종 깨우쳐줘야 한다는 것도. 영화에서 크리스토퍼의 아내 에블린이 말한 것처럼, 미래가 우리의 삶이듯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이 순간도 우리의 삶이니까 (Life is happening right now).

하지만 내가 드는 의문은 우리는 과연 오늘의 행복만으로 살아갈 수 있냐는 것이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행복’이라는 것이 우리의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모르겠다. 가끔은 대중매체에서 ‘오늘의 행복’이라는 개념이 과대평가된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물론 현실에서 그 개념이 너무 무시되고 있어서 그런 거겠지만 말이다.) 얼마 전 만난 친구가 나에게 그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행복과 만족 중에서 너는 뭘 택할 거야?”

얼핏 생각해보면 행복과 만족이 뭐가 그렇게 다른가 싶기도 한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두 개념은 나에게 다가오는 느낌이 조금 다르다. 만족이라는 감정은 행복이라는 감정보다 좀 더 자조적인 표현같이 느껴진다. ‘그래, 이만하면 됐지.’와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물론 성인의 경지에 이른 사람들은 욕심을 버릴 수 있는 그릇이 되는 사람들이니 그들에게는 그 감정이 곧 행복이 될 수도 있겠지만, 한낱 범인에 불과한 나에게는 그 두 감정은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 둘 중에 무엇을 택할 것이냐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어찌됐건 만족을 택할 것 같다. 행복은 나에겐 너무나도 일시적이고 불안정한 감정이다. 오늘 행복했다고 내가 내일도 행복한가? 오늘의 행복이 내일의 행복을 보장해주는가? 아니,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늘의 행복은 오늘 찾을 수 있고, 내일의 행복은 내일 다시 찾아나서야 한다. 그러면 이러한 단기적인 감정을 위해 앞으로의 장기적인 성과에 대한 보상을 양보할 수 있는가? 적어도 나는 이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할 수가 없다. 살아가다 보면은 장기적인 계획과 그것을 성실히 따를 때 느껴지는 안정감이 때로는 행복보다도 더 ‘내 삶은 잘 굴러가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순간순간이 모이면 긴 세월이 되지만, 순간의 행복이 모인다고 반드시 좋은 삶이 되는 것은 아니다.

결국은 오늘의 즐거움과 장기적인 미래의 안정감 사이를 끊임없이 줄타기 해야 한다는 뜻인 것 같기도 한데, 나라는 인간은 그런 줄타기 속에서 행복을 잘 못 느끼는 것 같다는 말이지. 그냥 이 영화를 보고 든 생각은 내가 가끔은 전자를 택하는 배짱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순간순간의 배짱이 나로 하여금 다시 삶의 안정감을 위해 앞으로 달려나갈 힘을 줄 수 있었으면 한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 ‘오늘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날이야’라고 말할 수는 없더라도, ‘오늘은 그렇게 나쁘지는 않은 하루였어’라고 말할 수 있기를. 오늘 하루가 행복할 수는 없어도, 불행하지는 않기를.

 

(2018.10.10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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