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를 읽었다.

0koh 2023. 6. 18.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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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을 좋아하고 배우고 싶어하는, 어쩌면 이 사회의 마이너에 속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철학 관련 서적에는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몇 번 시도해봤던 책들이 항상 극강의 난이도를 자랑했기 때문에 일종의 트라우마가 있었던 걸지도?)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는 나처럼 철학에 관심도 있고 얕게나마 알고는 싶지만 머리 싸매고 힘겹게 독서할 기력은 없는 사람들에게 추천할 만한 책이다. 시간순, 혹은 철학 전문가들이 평가하는 중요도 순이 아니라 오로지 ‘우리가 현실을 살아갈 때 효용이 있느냐’에 초점을 맞춰 선별한 철학 개념들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철학에 대해 관심만 있지 문외한이라 할 수 있는 내가 느끼기에도 다루는 내용이 얕다는 단점도 있지만, 그래도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나가면서 관심이 갔던 철학자와 그가 주장한 내용에 대해 차후 더 알아볼 기회를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교양 철학의 필요성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좋은 시작점이 되어줄 수 있을 책이라고 느꼈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흥미롭게 느꼈던 내용들을 몇 가지 뽑아보자면,

 

  •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반취약성(anti-fragile)
반취약성은 내구력이나 강건함을 초월한 의미다. 내구력이 있는 물체는 충격을 견디고 현상을 유지한다. 하지만 반취약성을 지니면 충격을 원동력으로 삼는다.
(…)
탈레브가 반취약성 개념을 중요하게 여긴 것은 우리가 예측이 무척 어려워진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
이 고찰을 꾸준히 해 나가면 탈레브가 지적하는 ‘반취약성’이라는 개념이 우리가 생각하는 성공 모델이나 성공의 이미지를 바꾸라고 재촉한다는 걸 알게 된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는 자신이 속한 조직과 자신의 경력을 최대한 탄탄하게 만드는 것이 성공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오늘날처럼 앞일을 예측하기 어렵고 불확실성이 높은 사회에서 겉으로 보기에 강건해 보이는 시스템이 실은 매우 취약하다는 사실이 점점 더 드러나고 있다.

 

  • 애덤 스미스, 보이지 않는 손
주체적으로 최적의 해답을 구하기 위한 기술인 논리 사고가 강세인 오늘날에는 ‘무엇이 정답인지 모르겠다, 그저 되어 가는 형편대로 결정하자’는 태도가 ‘포기’로 비칠지도 모른다.
(…)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가 저서 『안티프래질』에서 이 같은 지적 태도를 ‘소비에트-하버드 환상’이라고 이름 붙이고, 인과관계의 명석한 파악을 전제로 한 과학적 톱다운 사고법이야말로 시스템을 취약하게 하는 주범이라고 판단하고 비난했다. 모든 일이나 상황의 관련성이 점차 복잡해지고 한층 더 역동적으로 변해 가는 현대 사회에서는
(…)
바야흐로 최적의 해답을 최적의 접근법으로 찾으려만 하지 말고 ‘만족할 수 있는 해답’을 휴리스틱으로 추구하는 유연성이 필요한 시대다.

 

  • 질 들뢰즈, 파라노이아와 스키조프레니아
아사다 아키라는 파라노이아형을 정주하는 사람, 그리고 스키조프레니아형을 도망치는 사람으로 정의했다. (…) ‘반드시 분명한 목적지가 정해져 있지 않지만 이곳은 위험할 것 같으니 일단 움직이자’라는 마음 자세가 스키조프레니아형 인간의 특질이다.
(…)
누구나 부러워하는 회사에 입사하면 그 회사에 소속되어 있는 자신이 아이덴티티의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회사가 인기와 명성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 기간은 점점 줄어든다. 자신의 아이덴티티의 기반이 어느새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선망의 대상에서 벗어났을 때, 바로 그 아이덴티티를 버리고 게다가 ‘자신’이라는 존재를 무너뜨리지 않고 분리시킬 수 있을까? 틀림없이 그때는 파라노이아에서 스키조프레니아로의 전환이 필요할 것이다.

 

  • 페르디낭 드 소쉬르, 시니피앙과 시니피에
소쉬르는 개념을 나타내는 언어를 ‘시니피앙’, 언어에 의해 표시되는 개념을 ‘시니피에’라고 정의했다.
(…)
우리는 언어를 사용해서 사고한다.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그 언어 자체가 이미 무언가의 전제에 따라 달라진다면 어떻겠는가? 언어를 이용해 자유롭게 사고해야 하지만, 그 언어가 의지하고 있는 틀에 사고를 의지하게 된다. 그러면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 자유롭게 사고할 수 없고, 그 사고는 우리가 의거하고 있는 무언가의 구조에 의해 불가피하게 큰 영향을 받게 된다.
(…)
소쉬르의 지적이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풍부한 어록이 세계를 분석적으로 파악하는 역량으로 직결된다는 사실을 말하기 때문이다. (…) 어떤 개념의 특성이 ‘다른 개념이 아니다’를 의미한다면, 더 많은 시니피앙을 가진 사람은 그만큼 세계를 더욱 세심하게 분별해 파악할 수 있다.

 

이처럼 이 책을 읽으면서 현대사회의 불확실성에 대응할 때 도움이 될 만한 철학적 태도에 대해서 많이 배울 수 있었던 것도 뜻깊었지만, 가장 크게 배웠던 건 바로 저자의 태도였던 것 같다. 저자 야마구치 슈는 프롤로그에서 우리가 어떤 철학자의 주장에 대해 공부할 때 크게 두 가지의 배움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그 두 가지는 바로 ‘아웃풋으로부터의 배움’과 ‘프로세스로부터의 배움’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새로운 것을 접하고 습득할 때 결과 혹은 결론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결론은 별 볼일 없어 보이더라도 그 결론이 나온 사고 과정에서 벤치마킹할 만한 요소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비단 철학자뿐만이 아니라 일상에서 다른 사람들을 만날 때에도 그 사람의 주장 속에서 그 사람의 사고 과정을 이해하고 배울 점을 찾으려는 노력을 반복하다 보면 나도 무기가 되는 나만의 철학을 찾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2023.04.17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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