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읽었다.

0koh 2023. 5. 7.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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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개 그렇지만, 이 책 역시 내용에 대해 깊이 알고서 고른 책은 아니었다.

그저 한창 문학 도서들만 탐닉하고 있던 스스로에게 ‘그래도 가끔은 비문학도 읽으면서 교양 좀 쌓아야 하지 않겠니’하고 질책하던 시기에 이 책을 서점에서 만났을 뿐이다. 책의 표지가 예뻤고, 과학 분야 추천 도서 코너에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앞의 100페이지 가량은 ‘음, 조금 지루하지만 과학적 교양을 쌓는데 도움이 되지 않겠어?’라는 마음으로 읽었다.

하지만 이 책의 에필로그까지 읽고 덮었을 때 이건 과학 도서의 탈을 쓴 인문학 도서라고 느꼈다. 이 책은 위대한 (혹은 위대했던) 과학자의 발자취를 집착적으로 추적하고, 그 과정에서 그의 인간적/학문적 과오를 발견하고, 결국 얻고자 했던 것은 하나도 건지지 못한 폐허의 잔해 속에서 진정으로 삶을 일으킬 힘을 주는 단 하나의 태도를 발견하게 된 과정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또 동시에, 과학을 바라보는 시각과 인문학을 바라보는 시각, 그리고 더 나아가 인간의 삶을 바라보는 시각은 결국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우리는 그 모든 것들을에 대해 저자가 말했듯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매 순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본디 어떤 성격 검사를 해도 삶을 잔잔한 바다 위에서의 항해처럼 꾸려나가고 싶어하는 안정추구형으로 나오는 인간이라 어렸을 적부터 줄곧 '나에게 어떤 일이 닥칠지 알 수 없다'는 것이 인생의 가장 큰 공포 중 하나였다. 모든 불확정성을 통제하고 싶었다. 폭풍우의 기운이 느껴지면 달아나고 싶었다. 인간의 신체에게는 항상성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이듯, 나에게는 삶의 항상성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였다. 그런 나에게 우리는 우리가 안다고 믿는 것에 대해서도 사실 전혀 모를 수 있으며, 그게 학문을 넘어선 삶의 본질이라고 말하는 이 책의 결론은 공포스러워야 했다. 하지만 이 책은 지난 해 나에게 가장 큰 힘이 되어준 책 중 하나였다. 왜냐하면 저자는 그 모든 과정에서 ‘파괴와 상실과 마찬가지로 좋은 것들 역시 혼돈의 일부‘임을 깨달았다고 말해줬기 때문이다.

우리가 세상을 더 오래 검토할수록 세상은 더 이상한 곳으로 밝혀질 것이다. 부적합하다는 판정을 받은 사람 안에 어머니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잡초 안에 약이 있을지도 모른다. 당신이 얕잡아봤던 사람 속에 구원이 있을지도 모른다.

 

고여있는 물은 잔잔하고 예측 가능하지만 부패하기도 한다. 흐르는 물은 대체 어디로 어떻게 흐를지 알 수 없지만 나를 더 큰 바다로 이끌기도 한다. 신체의 항상성은 사실 어떤 환경에서도 변하지 않는 힘에 대한 것이 아니라, 체온이 떨어지면 끌어올리고 체온이 올라가면 끌어내리는, 변화하는 힘에 대한 것이다. 삶의 항상성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2023.01.24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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