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덕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향기템들을 좋아하고
시향해보고 싶은 리스트는 잔뜩 있으면서
정작 시향해보거나 사용한 뒤 향이 어땠는지 잊는 경우가 많아서 남겨보는 시리즈.
한 줄 감상평: 나는 콘크리트 사이에 피어난 잔디 (...)
근래 맡았던 향 중에서 가장 직관적이었어서 길게 쓸 말도 없다.
정말 정직하게 비 오는 날 콘크리트에서 나는 향이 난다.
근데 그 콘크리트가 조금 부서지고 깨어져서 그 사이로 작은 잡초들이 자라나 있는,
인적 없는 폐콘크리트건축물에서 날 것 같은 향.
더현대 서울 이솝 매장에서 시향하다가 이 향을 맡고 내가 "오, 이거 젖은 콘크리트 냄새 나"하니까
직원분이 웃으시면서 실제로 잊혀진 황무지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향수라서 그런 향이 나는게 맞다고 하셨다.
이런 향을 만들 생각을 하다니 정말 이솝답다고 밖에는...
이솝 스킨/바디케어 제품들은 전반적으로 선물하기에도 무난하고 좋다고 생각하는데
은근 그런 브랜드 이미지에 비해 향수는 한국인 기준에서 꽤나 도전적인 향이 많다고 느낀다.
노트 구성을 보면 시트러스 향조도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시트러스 향은 크게 느껴지지 않았고
정말 정직하게 젖은 콘크리트 냄새와 약한 풀향 혹은 이끼향만 느껴졌다.
너무나도 직관적으로 풍경이 떠오르는 향이다보니 사람의 이미지는 크게 떠오르지 않는다.
그냥 이런 향을 내뿜는 사람이 있다면 뭔가 인간 별로 안 좋아하고 (...) 고요하고 사색하는 거 좋아하는 사람일 것 같다.
인싸 절대 아님...
나는 너무 특정 장소나 공간의 이미지가 강하게 떠오르는 향은 내 몸에 뿌리기엔 부담스럽다 생각하는 편이라 (전 사람입니다만?) 딱히 구매 욕구가 들지는 않았다.
다만 정말 이런 향은 에레미아 밖에 없을 것 같다.
비에 젖은 축축한 돌과 이끼의 이미지가 연상되는 향을 찾는 사람이 있다면 꼭 맡아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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