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전에 미국의 어떤 유명인이 추천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고 (다른 책이랑 헷갈린 건지 누구인지는 아직도 못 찾았다) '소설가들의 소설'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소설이라기에 예전부터 궁금증을 가지고 있던 '스토너'를 북클럽에서 함께 읽었다. 이런 소설을 북클럽에서 읽게 되면 좋은 점은, 초반에 몰입하게 되기까지가 조금 장벽이 있는데 함께 읽는 책이다 보니 그 장벽을 혼자 읽을 때보다 훨씬 수월하게 넘길 수 있다는 것이다 (무조건 읽어야만 하는 책이니까). 이처럼 '스토너'는 내가 느끼기엔 초반 진입 장벽이 조금 있는 책이었지만, 특정 시점을 넘긴 이후부터는 유려하게, 그리고 때로는 내가 읽는 것을 멈출 수 없게 흘러가는 소설이었다.
사실 '이 소설은 이러한 내용의 소설입니다' 라고 소개하는 것이 어려울 정도로 그냥 스토너라는 이름의 한 사내의 삶을 그대로 그려낸 소설이다. 평범한 농부 집안의 아들로 태어난 스토너는 농업을 더 배우기 위해 대학에 진학하지만 우연히 들은 영문학 교양을 통해 영문학에 대한 자신의 열정을 발견하고 학자로서의 길을 걷게 된다. 스토너는 학자로서도 크게 명성을 떨치지도 못했고, 교육자로서도 학생들에게 큰 인정을 받는 것은 아니었으며, 심지어 다른 교수와 크게 사이가 틀어져 교수 생활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학교 밖에서의 삶이라고 좋은 것은 아니었다. 첫눈에 반해 청혼한 상대와의 결혼 생활을 처음부터 삐그덕 대기만 하다가 결국 체념 상태로 지내게 되었고, 처음에는 사이가 좋았던 딸과도 사이가 멀어지고 말았다.
이처럼 이 소설의 주인공 '스토너'는 사실 이런 소설이나 영화의 주인공이 되기에는 너무나도 평범하고, 어떤 면에서는 지나치게 실패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런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려면 나쁜 의미로건 좋은 의미로건 인생의 화려한 순간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스토너는 그런 장면이라곤 한 순간도 없었던 인물이니까. 심지어 그런 순간이 됐을 수도 있었을 불륜마저 결국 소설 주인공치고는 제법 시시하게 큰 여파 없이 그저 서로를 위해 여자가 떠나고 그런 현실을 체념적으로 받아들이는 인물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의미에서 '모든 인생은 한 편의 예술이다'라고 넌지시 말하는 소설 같아서 울림이 있었다. 학자로서도, 교육자로서도, 동료로서도, 남편으로서도, 아버지로서도, 아들로서도, 하다못해 연인으로서도 스토너는 큰 인상을 남길만한 인물은 아니었지만, 그런 스토너의 삶조차 이렇게 한편의 유려한 문학이 되는 것을 보면서 조금 서투르고 모자란 우리네 인생들도 모두 한편의 영화 같은 삶인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해주는 작품이었다.
물론 개인적으로 불륜 소재를 별로 좋아하지 않기도 하고, 특히 '스토너'에서 다뤄지는 불륜은 그 폐악과 그로 인한 상대의 고통에 대해서 다루기보다는 그저 스토너의 삶이 잠깐 비췄던 따스한 빛과 같이 묘사되었다는 점에서 특히나 '스토너'에서 불륜과 관련된 내용이 다루어졌던 부분에서는 흥미가 다소 떨어지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외의 부분에서는 평범하고 때로는 실패한 것처럼 보이는 한 사람의 인생을 담담히 읊어나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때로는 고루하고 힘겹기만 한 나의 삶도 멀리서 보면 하나의 유려한 예술 작품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위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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